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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자의 업무관리
·소통·섭외·시간 도둑 채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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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





작업자 해인의 책상(과 주변)



 구석기 시대의 조상들이 도구로 맹수를 사냥해서 하루하루 어떻게든 살아갔다면, 현대인들은 각종 도구에 기대어 어떻게든 일을 해나간다. 


업무관리의 도구: 노션
 “개인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영어는 저의 모국어가 아닙니다. 그래서 외국어로 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 한국어 버전 출시를 통해 노션(Notion)이 나만의 맞춤형 도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도 Notion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일상과 업무를 정리해 생산성을 향상시켜 보세요.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이제 Notion을 한국어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2020년 8월 10일, 노션 창립자의 메일 중에서)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생산성 도구 노션의 CEO 이반 자오는 한국어 버전 정식 출시에 맞춰 그동안 이 도구를 한 번이라도 써본 사람들에게 위와 같은 인사말로 마무리되는 메일을 보냈다. 


  나는 출근길에 그의 사려 깊은 메일을 읽다가 눈물을 훔칠 뻔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나는 일상적으로 얼마나 많은 영어를 접하면서 도구를 만지작거려야 했던가. 2020년 전후로, 한국은 북미 노션 이용자에 이어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시장이었다. 


  한국이 이 도구에 빠르게 열광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건 한국 작업자들의 일일 노동시간이 긴 탓이었을 거다. 오래 일한다는 건 개인이 처리해야 할 업무량이 많다는 거고(잔업 처리반), 언제나 동시다발적으로 일감을 손에 들고 저글링 중이며(서커스 단원),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과 주고받다가 누락되는 업무용 문서와 파일이 도대체 어디 있는지 찾기를 반복하다가(숨은 그림 찾기러) 어떤 도구의 유행에 온 마음을 빼앗기는 결과로 이어졌다. 나는 모든 작업에 관한 세부사항을 몰아넣은 이 도구를 잘 쓰고 있다.



소통의 도구:이메일+카톡 단체방+슬랙

이메일

 일과 생산성, 디지털 문화에 대한 연구자 칼 뉴포트는 이메일이 ‘비동기적 도구’라는 점에 주목한다. 메시지가 발송되는 시점과 읽히는 시점 사이에 대개 간극이 있다는 것. 즉, 누군가가 메시지를 보낼 때 수신자는 반드시 그 자리에 없어도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메일의 특성 때문에 우리에게 의견을 구하기 위해, 또는 대외비처럼 보안이 중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에게 즉각적으로 답변을 하지 않아도 된다. 문제는 메일이 쌓인다는 점이다. 휴가에 다녀와서 받은 메일함에 빼곡히 쌓인 메일을 읽다가 울어본 적이 있는지? (지금 저 회의할 시간 없습니다! 밀린 메일 읽어야 한다고요!)


카카오톡 단체방

  최근 사용량은 급격히 줄었지만, 카톡 단체방을 통해 소통을 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카톡 단체방에는 용건을 한 줄씩 여러 번 말하는 사람과 ‘전체보기’를 꼭 눌러야 할 정도로 장문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섞여 있다. 일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이만 말을 줄이며 이모티콘 하나로 감정을 표현하고 사라지는 사람들을 자주 보기도 한다. 중요한 건, 카카오톡에서 다운로드 기간이 만료된 파일은 아무리 아우성 쳐도 다운로드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파일이 공유되면 즉시 받아두기를 권한다.


슬랙

  영미권 저자들의 일에 대한 저서를 읽다 보면, 슬랙으로 대표되는 ‘자꾸만 울려대는 메신저 알람’에 대한 피로 호소를 심심찮게 본다. 거기에는 긴급 대응이 필요한 경우뿐 아니라 ‘읽어두면 도움이 되는 기사를 공유하는 사람들’로부터의 메시지 알림도 존재한다. 다수의 스타트업을 거쳤던 나는 이런 문화가 나에게 어느 정도 악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공유하는 사람은 누군가에게 이 기사가 도움이 될 거라 판단하지만, 공유를 받는 사람의 필요와 자주 어긋난다. 슬랙은 각종 다른 도구들과 매끄럽게 연동되는 기능이 있어서, 브랜드나 서비스를 운영할 경우 각종 수치와 지표, 또는 고객 리뷰와 불만이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되면서 무한히 알림을 만든다. 물론, 이런 메신저 서비스에서는 깊게 관여하지 않아도 되는 게시판의 알림을 꺼둘 수도 있지만, 차단과 뮤트는 혹여나 미래의 내가 무언가를 확인하지 못해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다는 공포를 안겨준다.


섭외의 도구: 이메일+인스타그램

이메일

  인플루언서나 인터뷰이 등을 섭외하는 일을 할 때는 먼저 상대의 SNS에서 문의와 제안을 일괄적으로 받는 ‘비지니스 메일’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싶어하거나, 공신력 있는 매체부터 개성 있는 신생 플랫폼까지 자기 홍보에 열려 있는 이들의 메일 주소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누구나 처음부터 제안 메일을 유려하게 잘 쓸 수는 없다. 주고받는 이메일의 수렁 속에서 흔쾌한 승낙과 아쉬운 거절의 경험을 두루 맛보다가, 어느 날 입장을 바꿔 누군가로부터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제안 메일’을 받게 되었다면 그 메일은 전문을 저장해두는 편이 좋다. 받는 사람으로서의 좋은 경험을 내가 보내는 사람이 되었을 때 응용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잘 쓰인 제안 메일이 갖춰야 할 요건들이 여럿 있지만, 가능 여부에 대한 답변을 신속하게 받고 싶다면 상대방이 의사 결정을 바로 내릴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인스타그램

  메일을 보냈다면 다시 상대의 SNS로 돌아와 프로필에 “DM은 확인하지 않습니다”라는 안내가 쓰여 있는지 확인한다. 그런 말이 별도로 없다면, 조금 전에 당신에게 메일을 보냈으며 답변을 기다리겠다는 정도의 용건으로 DM을 보내는 것까지가 섭외 도구 활용법이다. 일단 나의 진정성 있는 요청이 상대에게 읽히게 만들어야 한다.



시간을 축내는 도구: 이메일+유튜브

이메일

  ‘이메일’이 시간을 축내는 도구에도 포함되어 있어서 의외인지? 2018년 즈음부터 국내 뉴스레터 시장이 본격화되면서, 뉴스레터를 읽으며 회사에서 ‘월루(월급루팡)’ 한다는 사람들의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고도의 줄글 텍스트로 구성된 뉴스레터를 읽는 건 업무용 문서를 읽는 것과 크게 구분되지 않으니까. 물론, 뉴스레터를 통해 내가 일하는 업계에 관한 트렌드를 파악하거나, 오후 회의에서 써먹을 아이디어를 수집하는 참 인재도 있다. 보이는 족족 뉴스레터를 구독해둔 사람은 정상영업일 기준으로 새벽부터 자정까지 도착하는 새로운 뉴스레터들의 기척을 느낀다.


유튜브

  21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TV를 ‘바보 상자’라고 불렀지만 이제는 더도 덜도 말고 유튜브다. 유튜브는 내 시간을 교묘하게 앗아간다는 점에서는 다소 천재적인 네모라고도 부를 수 있다. 바보 상자 중에서도 쇼츠는 늘 ‘이렇게 끝나면 안 될 것 같은 순간’에 영상이 끝나면서, 마치 방송사고를 목격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안겨준다. 그리고 예고 없이 조금 전에 이미 봤던 영상이 반복 재생될 때, 우리는 엄지손가락으로 스크롤을 올려버리며 그 당혹감을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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